★★★★★
1.
너무 유명해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입니다.
비포 선라이즈 같은 경우는 약 15년이나 된 영화이니 혹시나 모르는 분들도 있을까하여,
대략적인 스토리를 읊어보겠습니다 - 원래 포스팅하면서 스토리 얘기 잘 안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왠지 꼭 남기고 싶군요. ^^
1995년작인 비포 선라이즈는 우연히 열차안에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쥴리 델피)가 만나서
다음 날 아침이 될 때 까지 - 왜냐하면 셀린이 떠나야하는 시간이 그때이기에 -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다루었습니다. 한 순간에 만나서 서로에게 빠지고
그만큼이나 짧은 시간을 보내는 두 주인공의 아름다운 이야기이죠.
그리고 정확히 10년 후인 2004년 비포 선셋이 개봉합니다.
그리고 그 영화속 시간도 정확히 비포 선라이즈로부터 10년이 흐른 시간이구요.
두 남녀 주인공은 다시 만나게되고,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엔 저녁(밤?)이 되기 전까지만 - 이번엔 제시가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할 시간이어서;; - 둘에게 시간이 주어집니다.
이러한 구성 자체로도 충분히 흥미로운데, 그 스토리까지 접하면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이제 각각에 대하여 좀 더 상세한 이야기를 해볼텐데요,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하시길.
2.
우선 비포 선라이즈입니다. 둘이 우연히 열차에서 만나 충동적으로 함께 내리게 되는 곳은
오스트리아 빈. 3년 전 유럽여행 때 다녀온 바 있어서 이 영화를 보며 왠지 그 로맨틱한 정경이
더 가깝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라이즈에서는 사실 엄청난 감동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단지 예쁜 영화가 있었을 뿐이죠.
그 둘의 대화는 마냥 로맨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사소한 문제부터 사회적 이슈까지 다루기에
마치 현실에서의 연인들의 데이트를 보는듯한 기분도 듭니다.
어쩌면 그러한 일상적인 내용 때문에 지루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훈훈한 두 남녀주인공과 아름다운 미쟝센 덕에 충분히 로맨틱하게 포장되어있습니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장면은, 펍에 들어가서 서로 친구에게 전화하는 척 하며 자신의 속내를
은근스레 내비추는 씬입니다. 즉, 제시는 자신의 친구에게 전화하는 척 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면
셀린이 제시의 친구역을 맡아서 그의 대화에 응해줍니다. 물론 주제는 그날 처음 만난
셀린이라는 여자에 대해서이구요. 그렇게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셀린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풀어내죠. 그리고 반대로 셀린 역시 그런식으로 제시에 대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은근 풋풋하면서도 감상적인 이 장면은... 기회가 되면 - 언젠가는 생기게 될 - 여친님과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장난이기도 합니다. ^^;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둘은 헤어지며 서로의 연락처같은 것은 주고받지 않습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서 - 제시는 미국, 셀린은 프랑스 - 지내는 와중에,
어설프게 전화나 편지를 주고받다가 서서히 그것이 뜸해져버려,
지금의 아름다운 추억까지 망치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때문이었죠.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둘은 아쉬움을 이기지 못해
6개월 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집니다. 이렇게 비포 선라이즈는 엔딩 크레딧을 올리죠.
3.
비포 선셋입니다. 이 둘이 다시 만나는 시간은 6개월 후가 아니라 10년 뒤.
그렇습니다, 그 둘은 약속처럼 6개월 뒤에 다시 만나지 못했어요.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겠지만, 어쨌든 그 둘은 프랑스에서 다시 재회하게 됩니다.
이미 제시는 결혼한 상황이고, 셀린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만큼, 제시의 비행시간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죠.
그날 왜 나오지 못했는지부터 - 제시는 나왔으나 셀린이 못나왔죠 - 예전처럼 사소한 이야기와
또 각자의 사랑이야기도 다룹니다.
비포 선라이즈보다 더 짧은 시간을 다루기에, 영화의 러닝타임과 영화 속 시간은
실제로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다뤄집니다. 그래서 유독 롱 테이크가 많기도 하구요.
둘은 시간의 촉박함을 알면서도, 아쉬움에 계속 '조금 더 조금 더' 하며
시간을 연장시켜 나갑니다. 그러다가 셀린을 바래다주는 차 안에서 둘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저는 이 장면 때문에 이 영화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둘의 대화가 흐르고 흘러, 결국 그 둘이 그때 다시 만나지 못함으로 인해 지금 자신이 어떠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토해냅니다. 특히나 셀린의 그것은, 제 마음을 심하게 뒤흔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비록 번역판일지라도 직접 옮겨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너도 알다시피 난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어. 네 빌어먹을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야.
(참고로, 제시는 그 둘의 10년전 이야기를 책으로 써냈습니다...)
그걸 읽으니까 네가 역겹게 느껴지더라. 내가 예전에 얼마나 로맨틱 했으며
거기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는지가 떠올랐거든.
지금은 사랑같은건 더 이상 믿지 않아. 사람에게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그러니까 그날 밤에 나의 로맨티시즘 모두를 쏟아부었던거고
그 이후로 그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어.
마치... 그런 것들을 그날 밤에 모두 다 네게 줘버리고 네가 그걸 가져간 것 처럼.
그게 날 이렇게 차갑게 만든거야. 사랑같은건 더 이상 못 느끼도록.
언젠가부터 저도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 상대가 누구이다...라기보다는
어느 순간에 나의 로맨티시즘을 다 쏟아부은건 아닌가 하는.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 아직 20대 후반에 불과하지만 - 더 이상은 첫눈에
확 끌리는 누군가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셀린이 하는 말을 들으며, 저도 예전에 한없이 - 때로는 지나치게 - 로맨틱하게 굴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셀린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직 그런
로맨티시즘이 내게 남아있을까 하는 의심도 함께.
아직 그 새로운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그것을 어느 순간에 모두
쏟아부어버려서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인지...
그런 씁쓸함과 함께 영화는 끝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마지막 씬은 셀린의 집. 그리고 그 안에서 그 둘은 다시 죽어가던 불꽃같은
로맨티시즘에 조금씩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뭐, 제시는 이미 유부남이기에 문제가 될수도 있겠지만 그건 접어두도록 하죠)
그리고 저에게도, 아직은 그런 불꽃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도 안겨주었죠.
정말이지, 이 영화를 보고 침대에 누웠을 때에는 제 지난날의 행적 하나하나를 되짚어보게 되더군요.
저도 모르게 살짝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무엇때문인지는.
아쉬움인지 그리움인지 애틋함인지 서글픔인지... 여튼 이 영화에 남은 여운은, 제겐 너무도 진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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